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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비용의 오류 - 재미없는 영화, 중간에 나가는 게 진짜 이득인 경제학적 이유

by hyoncross 2026. 2. 23.

영화관에 앉아 있습니다. 예고편만 보고 기대에 부풀어 예매했건만, 막상 시작하고 30분이 지나도 도무지 재미가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립니다. "티켓값이 얼만데, 그냥 있어야지." 결국 불편한 자세로 끝까지 앉아 두 시간을 버팁니다. 영화관을 나오며 드는 생각은 하나입니다. "시간 낭비했다." 이 상황, 낯설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 입니다.

 

 

매몰비용이란 무엇인가 —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매몰비용(Sunk Cost)이란 이미 지출되어 어떤 선택을 해도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합니다. 영화 티켓값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영화관 좌석에 앉아 영화가 시작된 순간, 그 1만 5천 원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자리를 지키든 나가든, 그 돈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란 오직 미래의 비용과 편익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지금 이 자리에 계속 앉아 있으면 앞으로 남은 1시간 30분 동안 무엇을 얻는가'와 '지금 나가면 그 1시간 30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비교해야 합니다. 이미 쓴 돈은 이 비교에 끼어들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결정이지, 지금의 결정 기준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사람들은 과거에 투자한 비용 때문에 현재의 선택을 왜곡합니다. 이것이 매몰비용의 오류입니다. 티켓값이 아까워서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먹기 싫은 음식을 돈이 아까워서 억지로 다 먹고,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여태까지 쏟아부은 게 얼만데"라는 이유로 계속 돈을 투자합니다. 돌아오지 않을 과거에 발목이 잡혀, 지금 이 순간의 올바른 판단을 놓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손해인 줄 알면서도 계속하는가 — 심리의 함정


매몰비용의 오류가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 깊숙이 뿌리내린 본능적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이득보다 손실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연구로 밝혀냈습니다. 이를 손실 회피(Loss Aversion) 라고 합니다. 같은 금액이라도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이 심리적으로 약 두 배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행동은 심리적으로 "나는 돈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처럼 느껴집니다. 끝까지 앉아 있으면 적어도 '내가 선택한 것을 끝까지 했다'는 위안이라도 남습니다. 이 심리적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계속합니다.
이 현상은 일상에서 놀랍도록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흥미를 잃은 지 오래된 자격증 공부를 "여기까지 했는데 그만두면 아깝잖아"라는 이유로 억지로 이어가고, 맞지 않는 연인과의 관계를 "우리 함께한 시간이 몇 년인데"라며 끊어내지 못합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수백억을 투자한 프로젝트가 망하고 있는데도 "여기서 접으면 그간의 투자가 물거품"이라는 이유로 추가 자원을 쏟아붓다가 더 큰 손실을 보는 사례는 경영 역사에 무수히 많습니다. 매몰비용의 오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種)이 가진 공통된 심리적 편향입니다.

 

현명하게 손절하는 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 매몰비용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매몰비용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핵심은 결정의 기준점을 과거에서 현재로 옮기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쓴 돈과 시간이 없다고 가정하면, 나는 지금 이것을 계속할 것인가?" 이 질문에 "아니오"라는 답이 나온다면, 지금 당장 멈추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영화를 예로 들면, "내가 지금 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할 것인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대답이 "아니"라면, 나가는 것이 맞습니다. 남은 한 시간 반을 더 나은 방법으로 쓸 수 있습니다.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카페에 앉거나, 오래 미뤄온 연락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잃은 돈을 복구하려다 시간까지 잃는 이중 손실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매몰비용을 끊어내는 능력은 단순한 경제 개념을 넘어 삶의 기술입니다. 과감하게 손절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성숙한 판단입니다.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참고 보는 것이 근성이 아니듯, 잘못된 선택을 일찍 인정하고 돌아서는 것이 진짜 용기이자 합리성입니다. 공짜 점심이 없듯,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으려는 시도도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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